이 부처님은 매우 세련되고 정돈된 불상양식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조성 년대로 미루어 볼 때,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 회덕현불우조 (懷德縣佛宇條)에 계족산 동북쪽에 있다고 언급한 봉주사(鳳住 寺)가 이 사찰의 전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며, 이 석불입상의 뛰어난 작품기량으로 보아 원래부터 상당히 중요한 사찰이 었음을 짐작케 함을 알 수 있다.
[ 출처 : 동국대 문명대 교수님의 석불입상 고증자료 용화사석불입상(龍華寺 石佛立像) ]

이 석불입상은 거대한 광배와 상대적으로 작은 불입상을 한 돌로 조각하여 불상을 부조식으로 묘사한 독특한 구도미를 보여줄 뿐 아니라 불상 자체의 얼굴과 신체, 수인과 불의 등 모든 특징이 상당히 정돈되고 세련된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얼굴과 체구의 형태가 단아하고 부조된 볼륨감과 세부적인 선과 옷주름선이 다소 딱딱하지만 유려한 9세기 말의 양식을 계승한 10세기 전반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만복사석불입상이나 남원 신계리 마애불좌상 또는 용화사 대불입상 같은 후삼국 특히 후백제 내지 고려초기에 해당되는 석불상들과 상당한 친영성이 있다고 판단되므로 이 불상도 10세기 초의 후백제 불상양식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흔하지 않는 이 시기 불상의 수준작으로 당시의 불상양식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불상의 세련미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므로 중요한 불상으로 판단된다.

이 불상이 있는 용화사는 조선조 후기에는 상당기간 폐사되어관계지견을 알 수 없지만 이 석불입상의 뛰어난 작품기량으로 보아 원래 상당히 중요한 사찰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동국여지승람 회덕현불우조(懷 德縣佛 宇條)에 계족산 동북에 있다고 언급한 봉주사(鳳住寺)가 이 사찰의 전신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석불입상은 우리나라 불상연구에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중시되어야 마땅하며, 대좌까지 완전하다면 국가지정 불상으로 평가되어도 무방하다고 판단된다.
용화사를 중심으로 대전의 명산인 계족산이 펼쳐지고 있다.

이 산은 닭의 발처럼 뻗어 있다고 하여 산 명이 지어졌으며,
옛날에는 봉황산이라도 불리워 졌다는 설이 있다.
읍내동 현대아파트 바로 전 입구부터는 뒷골이라 불리는 정겨운 마을로 들어와 산중골 저수지를 접어들면 용화사가 반기고 그 아름다운 산세속에 대전 8경의 하나로 저물어 가는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봉황정이 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봉황정을 중심으로 임도가 개설되어 각각의 등산로가 연결이 되어있으며, 또한 백제때의 산성인 계족산성이 떡 버티고 있다 .
계족산성에서는 대전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그 맑은 공기는 사람의 마음 속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또한 임도 구석구석 심어진 벚나무에서는 봄철 산행을 하면서 벚꽃의 화려한 자태와 벚꽃 잎이 쏟아지는 꽃비를 맞으며 걸으면 부처님이 탄생 하신 룸비니동산이 이렇게 아름다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계족산은 소나무가 많아서 소나무향 내음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면 더 없이 만족한 산행이 될 것이다.